독도와 울릉도는 모자(母子) 관계에 있는 섬이고, 오랫동안 무인도로 있었으므로 그 역사를 살피기 위해서는 울릉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울릉도가 고려 현종 이후 중앙정부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관원이 여러 차례 파견되었고, 조선시대에도 자주 관원이 파견되어, 동해상에 울릉과 우산(독도) 2섬이 있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러나, 왜구의 침입을 예방하기 위한 공도정책(空島政策)으로 한동안 주목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가, 17세기말 일본에 피랍된 동래(東萊)의 어부 안용복(安龍福)의 울릉도 영유권 주장을 계기로 다시 관심을 끌게 되었다. 안용복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1697년 대마도주가 일본 어민의 울릉도 어로활동을 금지한다는 일본 바쿠후[幕府]의 결정을 알려오면서 울릉도 영유권 분규는 일단 매듭지어졌다. 그러다가 1881년 일본인이 다시 울릉도를 왕래하자 조선은 일본에 항의하는 한편, 울릉도 개척에 착수하여 이듬해 4월에 16가구 54명을 울릉도에 이주시켰다. 1901년(고종 38)에는 울릉도를 울도(鬱島)로 개칭하고, 울도군의 관할구역에 석도(石島)를 포함시켰다. 석도를 훈독하면 독섬 또는 돌섬이 되는데, 지금도 울릉도주민들은 독도를 이렇게 부른다. 1905년 2월 일본은 시마네현[島根縣] 고시 제40호로써 독도를 죽도로 명명하고 일본 영토에 편입시켰다. 이에 참정대신 박제순(朴齊純)이 지령을 통해 독도가 대한제국 영토임을 명백히 했으나 당시 한국의 외교권이 일본에 접수된 상태였으므로 독도 영유권과 관련한 외교교섭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 뒤 울릉도는 1907년 교통상의 편의를 이유로 강원도에서 경상남도로 이속되었고, 14년에 다시 경상북도로 이속되었다. 북위37동경131º이고 평균기운12도입니다.
|